한국 천주교회의 자화상: 대구대교구 면직 사례가 던지는 질문
[오피니언] 한국 천주교회의 자화상: 대구대교구 면직 사례가 던지는 질문
최근 한국 천주교 대구대교구에서 발생한 한 사제의 면직 사례는 우리 사회와 교회 공동체에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2022년 12월 말, 심기열 신부가 갑작스럽게 면직 처분을 받은 이 사건은 표면적인 이유 뒤에 숨겨진 교회 조직의 운영 방식과 내부 자정 능력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교구 측은 심 신부의 면직 사유로 '교회법 위반 및 명령 불순종'을 들었으나, 정작 당사자에게는 구체적인 설명 없이 일방적인 통보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면직 인사 발령 공지에는 단순히 '휴양'에서 '면직'으로 변경되었다는 행정 사항만 기재되어 있었을 뿐입니다. 사제가 면직되는 일 자체가 매우 이례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유조차 명확히 설명받지 못했다는 점은 기본적인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 사건의 내막을 살펴보면, 심 신부가 2021년 말 자신이 보좌로 있던 본당 주임신부의 직무 태만을 교구에 고발한 데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젊은 사제가 상급자의 비위를 문제 삼은 이 행동에 대해 교구 성직자국장조차 법정 증언에서 '일반적이지 않다'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아래로부터의 정당한 문제 제기조차 조직 내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음을 시사합니다.
문제 제기에 대한 교구의 대응은 문제 해결보다는 문제 제기자에 대한 조직적 응징으로 이어졌습니다. 교구장은 주임신부의 직무 태만 의혹에는 눈을 감고, 오히려 심 신부의 태도를 문제 삼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 3월, 교구청 총대리주교는 심 신부에게 이메일을 통해 '억압된 감정이 있으니 전문 심리상담가의 상담이 필요하다'고 통보했으며, 의사 진단 없이 익명의 '자문단' 의견만을 근거로 '편집성 성격장애'가 의심된다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이후 심 신부는 일방적으로 '휴양' 명령을 받고 다른 본당으로 발령받았으며, 자신의 온전함을 증명하려는 노력은 외면당했습니다.
더욱이, 심기열 신부에게 적용된 엄격한 잣대가 다른 중대한 비위를 저지른 성직자들에게는 다르게 적용되었다는 점은 충격적입니다. 첨부된 파일에 따르면, 대구대교구에서 지난 20여 년간 면직된 사제는 심 신부 건을 포함해 단 세 명뿐이며, 그중 둘은 여자 문제와 금전 문제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다음과 같은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사제들도 면직만은 면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 미성년자 성추행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으나 면직이 아닌 정직에 그친 신부
- 교구 산하 법인 여직원을 성추행했으나 면직되지 않고 경미한 교구 징계에 그친 신부
- 노래방에서 여성 도우미와 술판을 벌여 한때 정직 처분을 받았으나 이후 본당 주임신부로 복귀한 신부
이처럼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성직자들에게는 관대하거나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했던 교회가, 정작 내부 비판을 제기한 사제에게는 가혹한 처분을 내렸다는 사실은 한국 천주교회 내부에 뿌리박힌 성직자 우대 문화와 내부 비판 억압 문화의 극명한 대조를 보여줍니다.
2022년 11월 22일자 대구대교구 참사회 회의록에는 "정직을 거쳐 면직까지 가려면 근거 대기가 어렵다"며 "차라리 바로 면직부터 내리자"고 결정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절차적 정당성이나 객관적 근거보다는 문제 인물을 조용히 제거하는 데 급급했던 조직의 의사 결정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구조에서는 평신도나 하급 성직자가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기 어렵습니다.
심기열 신부 사건은 한국 천주교 조직이 내부 자정 능력이 거의 전무한 폐쇄 체계임을 드러냅니다. 부조리를 고발한 내부 고발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보복과 낙인이며, 견제와 균형의 장치는 사실상 작동하지 않습니다. 은폐와 묵인이 관행화된 조직 문화 아래에서는 개혁을 바라는 양심적인 목소리조차 쉽게 침묵을 강요당합니다. 심 신부의 증언처럼, 억울하게 축출되었지만 조용히 사제복을 벗을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피해자들이 과거에도 많았다는 사실은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합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한때 사회 정의와 민주화를 위해 앞장섰다고 자부하지만, 정작 자신의 집 안에서는 비민주적 행태와 부패를 용인해온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심기열 신부 면직 사례는 단순한 개인의 불행을 넘어 한국 천주교회 내부의 구조적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교회가 신앙과 도덕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조직 유지와 권위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교회법과 제도가 때로는 범죄자를 감싸고 정의를 부르짖는 내부인에게는 칼날이 되는 현실은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죄를 뉘우치면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복음의 가르침이 성범죄자에게는 관대하게 적용되면서도, 권위에 도전한 이에게는 단호한 처벌로 돌아오는 이중성은 교회가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가 신뢰를 회복하고 복음의 가르침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폐쇄성과 권위주의를 극복하고 투명하며 정의로운 공동체로 거듭나려는 진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